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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로군의 공중보건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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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의사일지] : 환자가 쓰러져서 의식이 없어요 여느 때와 같이 방에서 조용히 있는데, 또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 한 사람이 의식이 없어요. 지금 데려갈게요" 하는 전화에 바로 작년에 공부했던 '의식저하'에 대해 공부했다. 의식저하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1. 거미막밑출혈 - 고혈압이 있는 환자에서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며 의식을 잃는 경우에 의심해볼 수 있다. 2. 뇌수막염 - 최근 두통, 발열, 감기증상, 경련 등이 동반되었을 때 의심해본다. 3. 저혈당성 혼수 - 섬에서는 좀 있을 수 있는 케이스이다. 당뇨병이 있는 환자에게 무리한 운동이나 결식을 할 경우에 의심해 볼 수 있다. 4. 간성뇌병증 - 간질환이 있고, 배에 물이차는 복수, 성격변화, 황달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 5. 알코올성 혼수 -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경우이다. 냄새로도 ..
[초보의사일지] : 칼에 맞았어요. 새벽 2시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여기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어요. 혹시 와주실 수 있나요?"라는 통화였다. 이럴 때, 절대 응해서 보건소를 비우고 환자의 집에 가면 안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1. 보건소를 비운 동안 더욱 더 응급한 환자가 올 수 있다. 2. 보건소 내에서 환자 치료에 필요한 도구들이 있어 갈 필요가 없다. 3. 단순한 안전의 문제 등의 이유를 말하고 경찰관들에게 "제가 갈 수 없으니 환자 상태를 대략적으로 알려주시고, 환자를 모시고 와주세요" 했다. 경찰관 선생님들이 환자를 데리고 보건지소로 왔는데, 대략적 상황을 확인하니 아버지와 아들이 술김에 싸우고, 서로 몸싸움까지 일어났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칼을 겨누었고 그 뒤에 어머니가 아들을 지키려고 하다가 어머니가 대신 칼을..
[초보의사일지] : 귀에 벌레가 들어갔어요. 2019. 11. 27 새벽 1시 30분에 환자가 왔다. 할머니인데, 귀에 벌레가 들어갔다고 하면서 소리 지르고 계셨다. 이경으로 귀를 보니 살짝 보이는 벌레...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집에 있는 벌레도 못 잡아서 맨날 종이컵으로 덮고 버리는 나인데, 새벽 1시고 "저는 못하니까 옆에 이비인후과 가보세요" 하기엔 섬이라 너무 밤이라 배도 안 뜨고, 어떤 의료시설도 없는 환경에서 유일하게 할머니의 귀에서 벌레를 빼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라는 생각을 하면 항상 뭐라도 시도해보게 된다. 근데 학교에서 '귀에 벌레가 들어갔을 때' 같은 수업은 하지 않으니까.. 어떻게 해야할까 하다가 최근에 읽은 웹툰에서 이 내용을 봤던 생각이 났다. 그래서 바로 옆에서 소리를 지르고 계신 할머니를 두고 웹툰을 켜서 두 화 ..
[초보의사일지] 짜증내는 보호자.. 속상하다 2020. 03. 03. 오늘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처음 보는 모르는 영화를 봤는데, 마동석이 나오는 영화였다. 엄청 무서운 분위기에 사람들이 밤이 되면 괴물처럼 변하는데 그 바이러스의 매개체가 벌레였다. 벌레가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고, 주인공은 지하 공연장 같은 곳에 있다가 주위 사람들이 감염되면서 벌레가 옮기는 걸 피해서 도망간다. 밖에 나갔을 때 몇몇 사람들이 멈춰있고 (빛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다가가지만, 주인공은 밤이 되기 전에 또 도망을 가는 게 내용이었다. 그런 꿈을 꾸고 뒤숭숭한 기분으로 나와서 진료를 시작했다. 한 할머니가 있는데, 기록을 보니 같이 일하는 형이 저혈압 증상이 나타나서 약을 중단했고, 90대이고 인지기능이 떨어져서 보호자에게 약을 중단했으..
[초보의사일지] 섬에서 처음 본 심장마비 2019. 06. 03. 한 할아버지가 일하다가 가슴이 아프다고 왔다. 원래는 진료받으러 안 오려고 했지만 주위 사람들이 점심시간 조금 가지라고 보건지소에 들리라고 했다고 해서 들렸다고 했다. 섬 보건지소 의사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라고 하면 '급성 심근경색'이다. 심장에게 가는 피가 안 가서 심장근육이 망가지는 질환인데, 흔히 말하는 심장마비가 급성 심근경색이다. 흔히 발생하는 일도 아니라 일단, 할아버지에게 몇 가지 물어봤다. "어디가 아프세요?" "여기 왼쪽 가슴이 아파요" "어떤식으로 아프세요?" "심장을 움켜쥐듯이 아파요" 등등 여기서 아차 했다. 심근경색을 책으로 배운 나지만, 이건 심근경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이 되어서, 급하게 보건지소의 모든 인력을 동원해 할아버지를 검사했다. 심전도를 찍..
[초보의사일지] - 섬에서 맞는 생일 2020. 03. 01. 오늘은 섬에서 맞는 첫번째 생일이다. 지금 바깥이 코로나로 난리인데, 어차피 못 놀 거 어떻게 보면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매번 생일은 요양당직 알바라던가, 섬이라던가 이런데서 맞는 게 가슴 아프기도 하다. 아침부터 일부러 카톡하다가 3시쯤 잤는데 7시부터 환자들한테 전화가 5번은 왔다. 낫에 베이고 발이 못에 박히고 이런 환자들을 아침부터 상대하는데, '내 생일인데 억울하네' 싶었다. 3월 1일이 생일이라는 점은 여러가지로 불편하다. 항상 개학 전날 모두가 정신 없을 때기도 하고, 쉬는 날이라 불러서 만날 정도로 정말 친한 친구들이 아니면 학교에서 축하도 받기 힘들었다. 이번에도 동기들이 레지던트 1년차 들어가기 전날, 후배들이 인턴하기 전날 이럴 때랑 겹쳤다. 섬에 있으면 사..
[초보의사일지] "배가 아파요" : 아픈 간호사 선생님 2020. 02. 27.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간호사 선생님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진료실을 찾았다. 단순히 그냥 소화불량으로 인한 복통으로 생각해서 소화불량 치료제들만 주었다. 체온과 혈압 모두 정상이고 장음을 들었는데 약간 항진되었지만 큰 문제는 없어 일단 마음이 놓였다. 호소하는 증상은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속이 안 좋았고, 구토를 엄청 한다고 한다. 내가 준 약 조차 바로 토할 정도였으니 많이 걱정이 되었다. 일단 본인이 섬을 나가려 타는 헬기나 배도 못 탈 것 같다고 해서 일단, 포도당 수액 (영양공급) 에다가 강한 진통제를 타서 놨다. 맞고 나서 좀 누그러졌다 생각해서 맘 편히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배가 아파요"라는 말에 그제야 제대로 진찰을 했다. 배를 누르자마자 "아" 하..
[초보의사일지 6] : 섬, 응급진료 섬에서 일하는 주말은 색다르다. 공중보건의사의 섬 근무는, 평일에 9~6시까지는 환자 진료를 하고, 6시 이후에는 응급 진료를 한다. 말 그래도 '24시간 당직' 체계이다. 주말에도 온콜 상태로 대기하게 된다. 공중 보건의 법에 따르면, 이 때는 심근경색증 의증, 심정지 의증, 뇌졸중 의증, 중증외상 의증, 기타 중증 응급질환 (급성 호흡곤란, 아나필락시스 쇼크, 경련 지속, 분만 징후, 신생아 질환, 급성 복통) 등의 응급 환자만 치료하는 게 의무적으로 되어 있지만 이 섬에서는 그냥 단순 감기 고혈압 등으로도 주말에 환자가 계속 온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긴다. 새벽 7시에 전화가 왔다. "오늘 고혈압 약 다 떨어졌으니 지금 약 타러 가겠소"라는 환자의 말에, 응급 진료만 본다고 설명드리고, 내일 오세..